션 베이커 감독은 언제나 카메라의 앵글을 낮추어 세상이 등 돌린 이들을 비춰왔습니다.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드 로켓>을 거쳐 마침내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아노라>는 그가 평생을 바쳐온 ‘소외된 여성’에 대한 탐구가 정점에 달했음을 증명하는 마스터피스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동시에, 주인공 '아노라'의 생명력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 대한 호소력 있는 리뷰를 전해드립니다.
📽️ <아노라>: 무너진 동화 속에서 피어난 가장 뜨거운 비명
1. 신데렐라 서사를 뒤집는 '잔혹한 현실주의'
영화는 브루클린의 스트립 댄서 '아노라(애니)'가 러시아 재벌 2세 '이반'을 만나며 시작됩니다.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 충동적인 결혼식을 올리는 전반부는 우리가 익히 아는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션 베이커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시댁의 반대와 폭력적인 수습 과정이 시작되는 순간, 영화는 낭만적 코미디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슬랩스틱 비극으로 변모합니다.
2. 소외된 자의 '목소리'를 포착하는 시선
션 베이커가 거장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가 주인공을 동정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노라는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결코 순순히 당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권리와 사랑(혹은 신분 상승의 기회)을 지키기 위해 스크린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 치며 저항합니다.
"그녀의 비명은 단순히 소음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려는 한 여자의 가장 처절한 언어입니다."
3.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감춰진 '외로움의 미학'
영화의 영상미는 눈이 시릴 정도로 화려합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색감은 역설적으로 아노라가 처한 차가운 현실을 부각합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권력층과 그 틈바구니에서 소모되는 노동 계급의 격차를 감독은 유머와 긴박함 속에 날카롭게 숨겨두었습니다.
4. 잊을 수 없는 라스트 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의 심장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모든 폭풍이 지나간 후, 아노라가 마주하는 감정의 실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합니다. 션 베이커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소외시킨 이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무게의 진심과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말이죠.
💡 총평
<아노라>는 거친 욕설과 소란스러운 소동극 뒤에 가장 순수한 인간애를 숨겨둔 영화입니다. 밑바닥 인생을 다루면서도 그들을 우아하게 안아줄 줄 아는 션 베이커의 시선은, 왜 우리가 여전히 극장에서 영화를 보아야 하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줍니다.
올해 가장 강렬하고도 슬픈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면, 아노라의 여정에 기꺼이 동행해 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