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쉰들러 리스트 <난징 사진관>

2025년, 선아오(申奥)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난징 사진관(南京照相馆)>은 우리에게 역사라는 이름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스러져간 개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게 합니다. 이 영화는 1937년 난징이라는 지옥의 한복판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로 침묵에 저항했던 이들의 기록이자,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입니다.

Dead to Rights

중국판 '쉰들러 리스트'로 불리며 전 세계의 눈시울을 붉힌 이 작품의 눈부신 성취와 가슴 아픈 한계를 동시에 짚어보겠습니다.


1. 찰나의 빛으로 어둠을 뚫다: 영화의 찬사

"증명한다는 것"의 숭고한 무게

선아오 감독은 전작에서 보여준 치밀한 서사 구조를 난징이라는 비극적 공간으로 확장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폭력에 저항하는 방식입니다. 총칼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필름을 지켜내는 과정은, 육체는 파괴할 수 있어도 한 인간이 존재했다는 '진실'만큼은 결코 지울 수 없음을 웅변합니다. 렌즈에 맺히는 아이들의 눈망울과 노파의 주름진 손은, 통계 속 숫자로만 존재하던 희생자들을 비로소 이름과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되살려냈습니다.

감정의 결을 살린 섬세한 미장센

2025년의 기술력으로 재현된 난징의 거리는 참혹하지만 역설적으로 서정적입니다. 선아오 감독 특유의 탐미적인 롱테이크 기법은 관객이 그 비극의 현장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특히 먼지 낀 사진관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햇살과, 그와 대비되는 거리의 포화는 '일상의 상실'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며 보는 이의 심장을 파고듭니다.


2. 진실을 향한 날카로운 질문: 비판적 시선

'감정의 과잉'과 '영웅주의'의 굴레

일부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신파적 연출에 다소 의존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기 위해 설정된 몇몇 극적인 장치들이 오히려 역사가 가진 본연의 엄중함을 가린다는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을 지나치게 성인(聖人)화하는 과정에서, 당시 민초들이 겪었던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고통이 전형적인 영웅 서사에 갇혀버렸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가해자의 묘사와 재현의 윤리

선아오 감독은 일본군 내의 고뇌하는 인물을 배치하며 인간성의 다각적인 면모를 비추려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개봉 당시 "가해자의 서사를 굳이 담아야 했는가"라는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피해자의 상처가 여전한 상황에서 시도된 이러한 인본주의적 접근은, 자칫 역사적 책임 소재를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3. 총평: 무너진 도시 위로 흐르는 연민의 노래

<난징 사진관>은 완벽한 영화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를 가장 가슴 시린 방식으로 증명해냅니다. 암흑의 시대, 누군가는 도망치고 누군가는 약탈할 때, 묵묵히 카메라를 닦으며 사라져가는 생명을 기록했던 그 손길은 2026년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울림을 줍니다.

필름 속에 박제된 웃음과 눈물은 시대를 건너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인간은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인 동시에, 타인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을 말입니다. 선아오 감독이 렌즈에 담으려 했던 것은 단순한 증거가 아니라, 어떤 비극도 끝내 꺾지 못한 '살고자 하는 의지' 그 자체였습니다.

"빛이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 사진관의 낡은 간판 아래 흐르던 이 대사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관객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촛불로 남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Netflix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이전